본문 바로가기

Every News for Kids

2020 도쿄올림픽 연기결정, 1940년 도쿄올림픽 취소의 반복?

반응형

보보의 뉴스노트, 오늘의 두 번째 픽은 

도쿄올림픽 연기 소식에 관한 CNN의 기사입니다. 

역사상 올림픽이 열리지 않았던 건 제 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뿐이라고 하는데요,

이번 도쿄 올림픽 연기결정이 어떤 영향을 가지고 올지, 읽어보겠습니다. 

 


 

What happened the last time the Olympics was stopped

It was meant to be the first Games to be held beyond Europe and North America, a spectacle to showcase to the world that Tokyo had overcome the earthquake that had devastated the city some years earlier. But the 1940 Olympics was the Games that never was.

edition.cnn.com

도쿄 올림픽(1940년 개최예정이었지만 취소)은 유럽과 북아메리카 이외의 지역에서 열리는 첫 올림픽경기였다. 몇 년 전 있었던 지진으로 황폐해졌던 도시가 그 아픔을 딛고 부활했다는 것을 전세계에 알릴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1940년 올림픽 게임은 개최되지 않았다. 

 

어제, 올해 7월 열릴 예정이었던 도쿄 올림픽이 내년으로 연기될 것이라는 발표가 있기 전까지, 80세 이하의 사람들 중 올림픽이 연기되거나 최소되는 경험을 했던 사람은 없다. 

 

전세계적 전염병이 돌고있는 상황에서 IOC와 도쿄 올림픽 협회가 올림픽을 계획한 대로 진행할 것인가 아니면 연기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과거에 대한 어떤 기억이 떠오른다. 1940년 소위 '잃어버린 게임'이라 불리우는 도쿄 올림픽은 2020년 지금의 이 상황과 이상하리만치 유사해보인다.

 

 

 

세계 무대에서의 영광

 

2020년 도쿄올림픽이 연기되기 전, 스포츠계의 가장 큰 축제는 현대 역사에서 세 번 연기되었는데, 모두 전쟁의 시기였으며 마지막 세 번재는 일본이 개최국었던 해였다. 

 

서구 엘리트 도시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올림픽 개최에 일본이 도전하면서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지를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일본 제국이 중국으로 영역을 넓혀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1931년의 만주사변에 대한 국제적인 비난과 1932년 있었던 LA올림픽에서 보여준 일본 선수들의 성공 덕분이었다. 

 

일본의 남자 수영선수들은 1932년 LA올림픽을 재패했다. David Goldblatt은 자신의 책 "The Games"에서 "국제적인 위신과 올림픽에서 보여준 성취간의 연관성이 일본의 올림픽 개최(1964년)를 실현 가능한 일로 보이도록 만들었고, 그 후에는 바람직한 것으로 보이도록, 그리고 결국에는 외교 정치면에서 필수적인 요소가 되도록 만들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9년 후로 예정된 2020년 올림픽이 '회복 올림픽'으로 홍보된 것처럼, 1930년 도쿄 시장이었던 나가타 히데지로는 1940년 올림픽 개최에 도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올림픽이 1923년 지역 대부분을 파괴시킨 관동 대지진으로부터의 회복에 도움이 되기를 바랬다. 

 

일본이 개최국으로 예정되어있던 1940년은 일본의 진무천황의 즉위 2600년을 맞는 특별한 해였다. 1940년 일본 올림픽 개최는 "자국의 올림픽에 대한 지지를 애국주의자적인(국수주의적인) 문화에 호소하는 완벽한 개념"이라고 Goldblatt은 설명한다. 

 

 

 

캠페인의 시작

 

일본은 1930년대에 그들만의 올림픽 역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1912년 첫 비유럽/미국 국가로 올림픽에 참가했고 IOC 대표단도 조직했다.

 

"일본은 1930년대 초반에 올림픽을 개최하겠다고 주장했습니다."예일대의 일본연구학자인 William Kelly 교수는 이야기한다.

 

유도의 선구자이자 IOC 멤버인 Baron Jigoro Kano가 1932년 올림픽 경기의 마지막에 기조연설을 하면서 일본의 올림픽 개최를 가능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당시의 IOC 위원장 Henri de Baillet-Latour에 따르면 Kano는 일본이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이 근대올림픽의 창시자인 Pierre de Coubertin의 정신을 계승하고 동서양을 하나로 이어주는 다리 역할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Sandra 박사는 자신의 책 "The 1940 Tokyo Games: The Missing Olympics"에서 이러한 맥락에 근거하여 1940년 게임은 "올림픽 정신은 전세계적이라는 IOC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중요"했다고 말한다.

 

자유주의자들이 세계적인 축제를 꿈꾸고 있었을 때 일본은 올림픽 개최의 이익을 다른 시각에서 봤다. 그들은 올림픽을 서구 사회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에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로 보았다. 

 

20세기 전반에 일본은 동북아에서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고 공고히하는데 힘을 쏟았고 대공황의 시기에는 군사적 점령을 통해서 자국의 경제적 위기를 해결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도쿄가 1940년 올림픽의 개최국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었고 로마와 헬싱키가 경쟁국으로 참여했는데 그 중 로마가 선택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1935년 일본의 IOC 멤버였던 수미구라 야타로는 파시스트 독재자였던 베니토 무솔리니에게 로마가 개최국 경쟁을 포기할 것을 부탁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갔다.

 

"서로서로 상부상조하는 방식의 거래는 국제 스포츠 정치학에서는 일반적인 관례입니다. 무솔리니는 '일본을 위해서 1940년 올림픽 개최는 포기하겠습니다. 만약 일본이 1944년 13회 로마 올림픽 개최를 도와준다면 말이죠'라고 솔직하게 발표했어요." Goldblatt은 자신의 책에 기록했다. 

 

 

 

1936년 베를린의 중요성

 

나치의 권력을 보여주는 전시장이었던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마무리하면서 IOC는 1940년 올림픽 개최국을 도쿄로 결정했다. 나치 독일이 올림픽을 개최한 4년 후 제국주의 침략국인 일본이 스포츠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자신의 이름을 새기게 된 것이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일년 후인 1938년 IOC는 동계올림픽 국가를 일본의 삿포로로 결정했다.

 

똑같은 해에 일본의 악랄한 중국 도시 파괴행위에 반대하는 주요 국가들의 보이콧 운동이 미국과 유럽의 매체에 보도되기 시작하면서 일본 정부는 하계와 동계 올림픽 개최권 모두를 박탈당했다.

 

중국과의 전쟁에 휩싸이고 세계적인 충돌의 조짐이 보이면서 군부정부는 국가동원령을 발동했다. 

 

"3개월 후, '일본의 정신 그리고 물질적 자원의 동원이 필요하다'라는 변명을 앞세우며 일본은 1940년 올림픽 개최를 포기했다.

 

일본 연구학자인 켈리박사는 이야기한다. "올림픽 연기는 1936년 올림픽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미국인들, 영국인들, 그리고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이 히틀러의 선전게임에 악랄하게 이용되었다고 생각하면서 1940년 올림픽을 보이콧할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일본이 1940년 올림픽 개최를 포기하게 된 것은 사실 베를린 올림픽의 영향이죠. 일본은 주요한 국가들없이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이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IOC는 1940년 올림픽 개최권을 헬싱키에 주기로 결정했지만 1939년 소비에트 연맹의 핀란드 침공으로 그 해에 올림픽 개최는 불가능해졌다. 2020년과 비슷하게 IOC는 불가피한 상황이 닥치기까지 희망의 끈을 놓치 않고 있었던 것이다.

 

Kelly는 "IOC는 세계는 점점 더 교전상태로 접어들겠지만 게임은 계속 될 것이라 했어요. 하지만 유럽이 불길 속에 있고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이니 현실에 무릎을 꿇고 모두 함께 올림픽을 취소했습니다." 라고 전한다. 

 

 

 

취소의 비용

 

도쿄의 1940년 올림픽 준비는 '꽤 상당'했다고 Kelly는 이야기한다. 교통, 위생시설, 빌딩, 그리고 호텔 등 인프라 시설 건설에 어마어마한 경제적 투자가 이루어졌다.

 

"지역 사업체들로 하여금 시설과 경기를 위한 물품 서비스 등에 투자할 것이 요구되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잠재적 고객 기반이 없다는 것을 후에 알게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업체 관계자들이 도쿄시에 분노했지만, 이런 문제는 정부에 자신들의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그런 성격의 이벤트가 아니죠." Kelly는 일본이 1940년 경제적인 면에서보다는 정치적인 면에서 더욱 고통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국가인지 다른 나라에 증명해보이기 위해서 세계의 가장 큰 행사를 이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덧붙였다. 

 

2020년 도쿄 올림픽 연기의 산술적 비용을 계산할 때 1920년대와 1930년대의 올림픽은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수십억대 규모와는 다르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올림픽사학자국제협회장인 David  Wallechinsky는 "그 당시(1940년 올림픽이 취소되었을 때)에는 이게 올림픽이다, 라는 느낌이 없었어요. 12년의 공백 후에 1948년 올림픽이 다시 개최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냥 너무나 행복해했죠. 60년대 TV가 보급되면서 사람들은 게임을 볼 수 있게 되었고 매일매일의 경기 결과를 알 수 있었어요. 그건 완전 다른 개념이었어요."

 

"1968년에는 올림픽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보려면 인종차별에 대해 비폭력 저항을 보여준 Tommie Smith와 John Carlos 선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TV로 지켜보면 되는 거였죠."

 

 

 

미래

 

올림픽이 개최될 때가 다가오면 위기가 찾아오는 것 같다. 2012년에는 보안, 안전 문제가 있었고 2016년에는 지카 바이러스 사태가 있었다. 2020년 현재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지난 주 일본의 부총리는 의회위원회에서 40년마다 세계적 위기 상황으로 올림픽이 중단되는 사태를 언급하며 도쿄가 '저주받았다'라는 발언까지 했다. 

 

올림픽 운동은 1980년과 1984년의 보이콧, 1972년 뮌헨과 1996년 아틀란타의 비극을 견뎠다. 하지만 지난 100년 동안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사건은 경험하지 못했다.

 

"우리 대중매체들은 올림픽을 향해 가면서 항상 부정적인 것들을 찾습니다. 그게 바로 좋은 이야기 거리이기 때문이죠. 2012년 사람들에게 런던 올림픽은 다 잘 될거라 말하는 것은 좋은 이야깃거리가 아니죠. 2000년 시드니 올림픽처럼 완벽하게 계획된 올림픽이라 할지라도 그 전에는 항상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떠돌곤 합니다. 그리고 위원회를 조직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때면 이렇게 경고하곤 하죠. 이건 '당신'에 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 관한 것이라고 말이죠. 하지만 가끔씩 이런 경고들이 현실이 되고 바로 지금이 그런 경우죠."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