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11
주말입니다.
자고로 보보의 주말은 ‘몸은 조용히, 머리는 부지런히’ 라는 목표달성을 위한 이틀의 시간입니다.
토요일, 오늘은 목표달성! 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The Atlantic> 구독
오늘 보보의 스터디 노트에서 주목할만한 사건은 <The Atlantic> 구독을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미 3개의 뉴스 잡지를 구독하고 있어서 망설였는데,
(‘너 이걸 정말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니?’라는 진실된 마음의 소리...)
지난번 Trial 기간 너무 즐겁게 읽기도 했고, 단순히 Fact를 전달하는 뉴스 기사에서 조금 더 나아가는 잡지를 하나 더 읽고싶은 생각에 구독 버튼을 눌렀습니다.
스터디노트 본격 시작!
제목은 <Fashion’s Racism and Classism Are Finally Out of Style> 이란 글로 The Atlantic의 스태프 작가인 Amanda Mull이 쓴 기사입니다.
경찰의 흑인 과잉진압으로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에 이르게 되면서 시작된 인종차별 반대운동. 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400년의 긴 시간동안 뿌리깊게 박혀있던 미국 역사 속, 사회 전반에 걸친 인종 차별의 행태들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특히 패션계에서 팽배하던 인종 차별을 꼬집고 변화의 움직임을 캐치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우선 단어정리
brazenly, agrarian, regalia, burgeon, inextricable, ingrained 정도를 찾아보았네요. Inextricable, ingrained는 정말 여러번 찾아본 단어인데, 단어가 쌓여가면서 비슷한 의미의 단어가 슬슬 헷갈리는 단계인지라 또 서칭했어요. 이번에 Ingrained는 확실히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Ingrained elitism으로 말이죠.
오늘 기사를 읽으며 한 생각들, 기억할 점
이런 기사들을 읽으면 제가 순간 순간 가지고 있던, 하지만 한 번도 소리나 글의 형태로 표현한 적 없는 생각에 누군가가 정확한 형태를 부여한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특정한 형태를 지닌 단어와 문장, 그것도 잘 쓰여진 문장으로 바뀐 또 다른 저의 생각을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답니다.
Telling people what they should look like often also requires telling them what’s unacceptable. ‘이런 게 멋진거야. 이런 모습이 좋지’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동시에 (은연적으로) ‘저런 모습은 용납될 수 없어. 별로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죠. ‘이게 맞아’라고 하는 건 곧 ‘이게 아닌 것은 틀린 거야’라는 의미이니까요.
To spend money on feeling better, people first need to feel bad. 더 나은 기분을 느끼기 위해 돈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기분 나쁨을 느껴야 한다는 것.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현재의 나의 상태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자각이 있어야 하는데 패션계는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나에 대한 부정, 불만감을 조장함으로서 소비를 부추기고 자신들의 몸집을 불려가고 있습니다.
Modern corporations want constant growth, and in fashion that’s impossible without getting into the wallets of regular people looking for a little taste of clout, whether they’re in the growing upper class in East Asia or the Middle East or in newer markets in Brazil or India. 사실 2개의 거대 그룹이 대부분의 명품 브랜드들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LVMH과 Kering이 바로 그들이죠. 이들은 이미 어마어마한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이란 조직은 끊임없는 성장을 추구하죠. 그렇다면 명품을 판매하는 이 두 그룹은 어떻게 매년 지난 해를 뛰어넘는 성장을 할 수 있을까요? 바로 평범한 사람들이 명품의 맛을 알도록 하는 것이죠.
Entry-level status symbles-a Gucci belt or Chanel earrings or a Louis Vuitton wallet-covered in conspicuous logos and with prices in the hundreds instead of thousantds of dollars are accessible to people with credit cards who want to project economic power they don’t quite have. 구찌 로고가 박힌 벨트나 샤넬 로고가 크게 박힌 액세서리, 루이비통 지갑같은 제품들은 브랜드 내에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진입장벽을 낮추어 평범한 일반인들을 명품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신용카드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실제로는 그들에게 없는 경제적 힘이 마치 그들의 손에 있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해주죠.
A more just industry would exist in a world in which the prices of goods are tied to fair wages for workers and ecologically sound materials, instead of to lavish marketing and events budgets and high executive salaries. 우리가 지불하는 비싼 옷, 패션 아이템의 가격이 과도한 마케팅비용이나 이벤트 예산, 임원의 고임금 때문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제품의 가격은 제품을 생산해 낸 노동자들의 노력에 대한 가치에 공정한 대가, 친환경적으로 생산되고 활용된 자원에 대한 지불이길 바랍니다.
소위 말하는 인플루언서로 인정받기 위해 고가의 명품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사회에서는 공정함이 빛을 발하지 못합니다. 나의 목소리를 모두가 듣게 하기 위해서 세대에 걸쳐 축적된 부가 필요하지 않은 사회에서만이 ‘정당함’을 가진 산업과 성공의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It would be a world in which you don’t need generational wealth to get your ideas heard.
If you systematically created your business with the intent of celebrating certain ideas, and everything has been built on that structure, then it’s rotted from the root. 어떤 특정한 이미지를 브랜드의 ‘유산’이라 공공연히 강조해온 명품 하우스들. 이제는 그 ‘유산’들이 현대의, 2020년의 관점에서 재조명, 재평가받고 있습니다. 어제의 건국의 아버지가 오늘의 인종차별주의자, 위선자가 되는 시대. 다양성, 평등성을 존중하지 않고 백인우월주의, 유럽중심 사고, 엘리트주의에 젖어 있던 명품 브랜드들이 시대에 어떤 모습으로 적응해갈지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